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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3대 왕 태종 왕비 원경왕후 민씨 가계도 본문
조선 3대 왕 태종 이방원의 왕비 "원경왕후 민씨"는 1365년 7월 29일(음력 7. 11) 고려의 손꼽히는 명문 가문 "여흥 민씨"의 수장 "민제"와 삼한국대부인 "여산 송씨" 사이에서 4남 4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풍족한 명문가의 셋째 딸로 귀하게 자란 "원경왕후"는 어린 시절부터 매우 빼어난 외모와 총명하고 지혜로웠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 "민제"는 셋째 딸 "원경왕후"의 남편감으로 당시 고려 무장으로 최고의 명성을 날리던 이성계의 4남 "이방원"을 선택해 1382년 혼례를 치르게 합니다.
2살 어렸던 "이방원"은 "원경왕후"집에 들어와 처가살이를 시작했으며 매우 행복하게 신혼 생활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이성계가 고려 무장으로 요동정벌을 위해 진군하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고려를 멸망시키고 1392년 조선을 건국합니다.
하지만 조선 건국에 많은 공헌을 했던 "이방원"은 철저히 소외되었고 이복동생 "이방석"이 왕세자에 책봉되자 불만을 품고 1398년 난을 일으켜 동복형 이방과(2대 정종)을 왕으로 옹립합니다.
그리고 1400년 모든 권력의 중심에 있던 이방원(태종)에게 "정종"이 왕위를 물려주면서 조선 3대 국왕에 즉위하게 되었으며 "원경왕후"도 왕비(정비)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원경왕후"도 남편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여흥 민씨" 가문의 많은 사람들과 큰 역할을 했는데 특히 이방원이 위험에 처할 것을 미리 예견하여 대비했고 또한 무기와 사병 등을 몰래 숨겼다가 내어주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하지만 "태종"이 즉위한 이후 왕권 강화를 위해 외척세력을 제거하면서 "원경왕후"와도 큰 갈등이 생기게 되었고 또한 후궁을 들이는 문제에서도 심한 다툼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태종은 외척세력 중에서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데 많은 공로가 있던 "원경왕후"의 동생 4명을 모두 제거했는데 1410년에 "민무구", "민무질"을, 1416년에는 민무휼, 민무회를 각각 사사했습니다.
원경왕후는 자신의 노력으로 남편을 왕으로 만들고 또한 본인도 왕비의 자리에 오르면서 찬란한 앞날을 예상했겠지만 오히려 왕비가 된 이후에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 충녕대군(세종대왕)이 1418년 조선 4대 왕위에 오르면서 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왕대비가 되었으며 2년 후인 1420년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출생~사망"
부"父": 여흥부원군 "민제" 1339~1408"
모"母": 삼한국대부인 송씨 "1342~1424"
남편"男便": 이방원 "1367~1422" *3대 왕 태종
왕비 원경왕후 민씨 "1365~1420"
원경왕후의 형제는 언니가 2명 있었고 남동생 민무구(?~1424), 민무질(?~1410), 민무휼(?~1416), 민무회(?~1416) 4명이 있었으며 여동생 1명이 있었다.
원경왕후는 "태종" 사이에서 4남 4녀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기록에 의하면 장남 양녕대군이 태어나기 이전에 3명의 아들도 낳았는데 모두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고 전해짐
양녕대군(이제) "1394~1462" *폐세자
효령대군(이보) "1396~1486"
충녕대군(이도) "1397~1450" *4대 왕 세종
성녕대군(이종) "1405~1418"
정순공주 "1385~1460"
경정공주 "1387~1455"
경안공주 "1393~1415"
정선공주 "1404~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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