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조선시대 계보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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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2대 왕 인종"仁宗"은 연산군(10대 왕)을 몰아내고 1506년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11대 왕)과 "장경왕후 윤씨" 사이에서 1515년 3월 10일(음력 2월 25일)에 태어났으며 초명은 "이호"입니다. 어머니 "장경왕후 윤씨"는 1491년 파원부원군 "윤여필"의 둘째 딸로 태어나 1507년에 왕비(1계비)로 책봉되어 "인종"을 낳았지만 1주일 만에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인종"은 할머니 "정현왕후 윤씨"가 돌보았으며 또한 중종의 다음 왕비(2계비)로 책봉된 "문정왕후 윤씨"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게 되었습니다. 1520년에는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524년에는 금성부원군 "박용"의 딸 "인성왕후 박씨"를 세자빈으로 맞이했습니다. "문정왕후 윤씨"는 "인종"이 세자 시절을 보내..

"소헌왕후 심씨"는 1395년 10월 12일(음력 9. 28)에 청천부원군 "심온"과 "삼한국대부인 "순흥 안씨"사이에서 3남 6녀 중에서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14살이 되던 1408년에는 2살이 어린 충녕군(태종 이방원의 3남)과 혼인하면서 "경숙옹주"에 봉해졌습니다. 이후 세자였던 태종의 장남 "양녕대군"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며 1418년 폐위되었고 "충녕대군"이 새로운 왕세자에 책봉되면서 소헌왕후도 "세자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충녕대군(세종대왕)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조선 4대 왕위에 즉위하게 되었고 소헌왕후도 자연스럽게 왕비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태종은 왕위를 양위하면서도 "군권"과 "인사권" 등을 마지막까지 주지 않고 실권을 행사했습니다. 이후 태종은 왕권 ..

조선 3대 왕 태종 이방원의 왕비 "원경왕후 민씨"는 1365년 7월 29일(음력 7. 11) 고려의 손꼽히는 명문 가문 "여흥 민씨"의 수장 "민제"와 삼한국대부인 "여산 송씨" 사이에서 4남 4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풍족한 명문가의 셋째 딸로 귀하게 자란 "원경왕후"는 어린 시절부터 매우 빼어난 외모와 총명하고 지혜로웠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 "민제"는 셋째 딸 "원경왕후"의 남편감으로 당시 고려 무장으로 최고의 명성을 날리던 이성계의 4남 "이방원"을 선택해 1382년 혼례를 치르게 합니다. 2살 어렸던 "이방원"은 "원경왕후"집에 들어와 처가살이를 시작했으며 매우 행복하게 신혼 생활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이성계가 고려 무장으로 요동정벌을 위해 진군하다가 위화도에서 ..

조선 4대 왕 세종대왕"世宗大王"은 1397년 5월 15일(음력 4월 10일) 태종 이방원과 (태조 6년) "원경왕후 민씨" 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으며 초명은 "이도"였습니다. 1400년 태종이 조선 3대 왕위에 오른 이후 1408년에 충녕군"忠寧君"에 봉해졌으며 1412년에는 대군으로 진봉되면서 "충녕대군"이 되었습니다. "충녕대군"은 형이 2명(양녕대군, 효령대군)이 있었기 때문에 왕위 계승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첫째 형 "양녕대군"이 세자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수차례 문제를 일으키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특히 결정적으로 종2품 "곽선"의 첩이었던 기생 "어리"를 강제로 궁에 들였던 사실이 발각되면서 "태종"이 크게 분노했는데 결국 왕세자의 자리에서 폐위됩니다. *조선왕조실록 ..

"효령대군"은 1396년 1월 6일(음 1395. 12. 11)년 조선 3대 왕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 사이에서 "양녕대군"에 이어 2남으로 태어났으며 초명은 "이호", 이후에 "이보"로 개명했습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태종의 5남이지만 3명은 어린 시절 사망했다. 태종 이방원이 1400년에 조선 3대 임금에 즉위하면서 형 "양녕대군"이 1404년에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이호"는 1405년 "효령군", 1412년 "효령대군"에 책봉되었습니다. 이후 형 "양녕대군"이 세자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국왕에 오를 자질도 부족하다는 이유로 1418년 "왕세자"의 자리에서 폐위됩니다. 조선 왕실의 법도에 의하면 태종의 2남 "효령대군"이 왕세자의 자리를 이어받아야 되는데 3남 "충녕대군"이..

양녕대군은 1394년 조선 3대 왕 태종 이방원"1367~1422"과 원경왕후 민씨"1365~1420"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초명은 "이제"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양녕대군이 태어나기 이전에 태종 이방원은 아들이 3명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모두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실질적인 장남으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1400년 정종(2대 왕)의 양위를 받아 조선 3대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양녕대군"이 1402년 원자"元子"에 책봉되었고 1404년에는 왕세자에 책봉됩니다. 이후 자연스럽게 왕위를 이어받을 것만 같았던 "양녕대군"은 세자로서의 품위에 어긋나는 일을 많이 하면서 아버지 "태종"과 많은 갈등을 겪게 됩니다. 또한 "양녕대군"이 국왕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는 신하들의 상소가 이어..

조선 1대 왕부터 순서대로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선조, 광해군, 인조, 효종, 현종, 숙종, 경종, 영조, 정조, 순조, 헌종, 철종, 고종, 순종입니다. ------------ 양자 입적 "母" 1대 태조(이성계) 2대 정종(이방과): 태조의 2남, "신의왕후 한씨" 3대 태종(이방원): 태조의 5남, "신의왕후 한씨" 4대 세종(이도): 태종의 3남, "원경왕후 민씨" 5대 문종(이향): 세종의 1남, "소헌왕후" 6대 단종(이홍위): 문종의 1남 "현덕왕후 권씨" 7대 세조(이유): 세종의 2남, "소헌왕후" 8대 예종(이황): 세조의 2남, "정희왕후" 9대 성종(이혈): 세조의 손자, "소혜왕후 한씨" 10대 연산군(이융)..

내명부"內命婦"란 궁중에서 근무하는 여관"女官"을 총칭하여 말하는 것으로 품계에 따라 구분됩니다. 물론 조선 시대에 따라 내명부의 품계도 다소 변화가 있는데 경국대전에 기록된 내명부 품계(종9품~정1품)를 살펴보겠습니다. * 내명부의 수장은 왕비(중전)이며 후궁은 왕의 부인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정1품 빈"嬪"에서 종4품 숙원"淑媛" 등의 내명부의 품계를 받게 됩니다. * 후궁이 되는 방법은 간택받는 경우도 있지만 궁인 중에서 왕의 승은을 입으면 후궁에 오르게 된다. 내 명 부 정1품: 빈"嬪" 종1품: 귀인"貴人" 정2품: 소의"昭儀" 종2품: 숙의"淑儀" 정3품: 소용"昭容" 종3품: 숙용"淑容" 정4품: 소원"昭媛" 종4품: 숙원"淑媛" * 일반적으로 "간택 후궁"은 종2품 "숙의"에 책봉되고, ..

소현세자는 1612년 2월 5일(음력 1. 4) 인조(16대)와 "인열왕후 한씨" 사이에서 첫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처음 이름은 "이왕"입니다. 아버지 "인조"가 1623년 광해군(15대)을 몰아내고(인조반정) 왕위에 오르면서 "소현세자"도 1625년 왕세자에 책봉됩니다. 이후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청나라(후금)에 패하면서 막대한 배상금과 함께 20만 명의 백성 그리고 동생 "봉림대군" 등과 볼모로 잡혀가게 됩니다. 청나라에서 9년 동안 억류되었던 "소현세자는" 1645년에서야 조선으로 귀국하게 되었지만 아버지 "인조"와 갈등 속에서 2개월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다음 왕위는 동생 "봉림대군(17대 효종)"이 이어받게 됩니다. * 사실 조선 왕실의 법도에 의하면 "소현세자"의 아들 "이석..

효명세자"孝明世子"는 1809년 9월 18일(음력 8. 9)에 조선 23대 왕"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사이에서 하나뿐인 아들로 태어났으며 처음 이름은 "이영"이었습니다. 왕비의 원자 탄생은 숙종 이후 150년 만의 일로 정통성에서 완벽했기 때문에 1812년 자연스럽게 왕세자에 책봉되어 순조롭게 왕위 계승을 위한 수업을 받게 됩니다. 당시는 외척 세력이었던 "안동 김씨"가 권력의 중심에서 많은 전횡을 저지르며 왕권까지 위협했던 시기로 국정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순조"는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효명세자"의 부인 "신정왕후 조씨"의 가문 "풍양 조씨" 사람들을 주요 요직에 기용하며 권력을 분산시킵니다. 또한 "순조"는 1827년에 건강 악화를 이유로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임금 대신에 정사를 돌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