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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DNESS
흥선대원군은 1821년 1월 24일(음력 1820년 12. 21)에 "남연군"과 "여흥군부인 민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이하응입니다. 이하응의 아버지 "남연군"은 인조(16대 왕)의 3남 "인평대군"의 6대손으로 왕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1815년 영조(21대)의 손자 "은신군"의 양자로 입적하면서 왕권과 가까워졌습니다. 철종(25대) 재위 당시에는 "안동김씨"가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왕권까지 위협했던 시기인데 당시 "이하응"은 철저히 권력자들의 눈을 속이고 기회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후 "철종"이 후사도 없이 병세가 악화되는 소식을 들은 "이하응"은 당시 왕실의 최고 어른 "신정왕후 조씨"에게 접근해 신임을 얻고 뜻을 같이 하기로 약속합니다. 결국 1863년 철종이 사망하자 "신정왕후 조씨"는..
"사도세자"는 1735년 2월 13일(음력 1. 21)에 영조(21대)와 "영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처음 이름은 "이선"이었습니다. 영조의 첫째 아들 "효장세자"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둘째 아들 "사도세자"가 1736년 왕세자에 책봉됩니다. 이후 철저한 국왕 수업을 받으며 자라게 되었는데 많은 사건에 휘말리며 아버지 "영조"의 신임을 잃게 되었고 결국 1762년 세자의 자리에서 폐하고 뒤주 속에 가두어 8일 만에 사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조는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정조)을 효장세자(진종)의 양자로 입적해 다음 왕위를 이어받게 합니다. 사도세자는 4명의 부인 사이에서 5남 3녀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부"父": 영조 "1694~1776" *21대 왕 모"母": 영빈 이씨 "1696~1..
조선 제27대 왕 순종"純宗"은 1874년 3월 25일(음력 2. 8)에 고종(26대)과 "명성황후 민씨"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처음 이름은 "이척"이었습니다. 1875년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897년에는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아버지 "고종"은 대한제국 초대 황제가 되었고 "순종"은 자연스럽게 "황태자"에 오르게 됩니다. 이후 1907년 "고종"이 일본과 친일파 등의 무력에 의한 강압으로 대한제국 황제의 자리를 물러나게 되면서 "순종"이 이어받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경술국치)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을 상실하고 일본에 점령되었으며 "순종"도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고 이왕"李王"이라 불리게 됩니다. 그리고 1926년 4월 25일 망국의 한을 달래다 53세의 나이에 세상을 ..
조선 제 26대 왕 고종"高宗"은 1852년 9월 8일(음력 7. 25)에 "이하응(흥선대원군)"과 "여흥부대부인 민씨"사이에서 2남으로 태어났으며 처음 이름은 "이재황", 아명은 "이명복"이었습니다. "고종"의 할아버지 "남연군"은 인조(16대)의 3남 "인평대군"의 6대손인데 "사도세자"의 아들 "은신군"의 양자로 들어갔습니다. 이후 철종(25대)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병세가 악화되자 "이하응"은 당시 왕실의 최고 어른인 헌종(24대)의 어머니 "신정왕후 조씨"에게 접근해 신임을 얻습니다. 그리고는 "철종"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경우 자신의 아들 "이명복(고종)"을 왕위로 올리는 것에 동의를 받아 냈고 결국 1863년 12월 고종이 12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너무 ..
조선 제25대 왕 철종"哲宗"은 1831년 7월 25일(음력 6. 17) "사도세자"의 손자 "전계대원군"과 "용성부대부인 염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처음 이름은 "이원범"이었습니다. 과거 할어버지(은언군)가 많은 사건에 휘말리면서 왕족 신분을 박탈당하고 유배되어 사사되었는데 이후 철종 가족은 또다시 역모에 휘말리면서 유배지를 전전했습니다. 강화도에서 평범하게 농사를 짓고 살던 "철종"은 19살이되던 1849년 조선 24대 왕 "헌종"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갑자기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준비도 없이 임금의 자리에 오른 "철종"을 대신해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시작했고 1852년에서야 친정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외척 세력이었던 "안동김씨"가 권력의 중심에서 많은 전횡..
조선 제24대 왕 헌종"憲宗"은 1827년 9월 8일(음력 7. 18) 순조(23대)의 아들 "효명세자"와 "신정왕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처음 이름은 "이환"이었습니다. 1830년 아버지 "효명세자"가 22살의 나이에 갑자기 사망한 이후 왕세손에 책봉되었으며 1834년 "순조"가 세상을 떠나자 8살의 나이에 "헌종"이 왕위를 이어받게 됩니다. 이후 나이가 어린 "헌종"을 대신해 대왕대비(순조의 비)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였으며 1841년에서야 직접 나라의 정사를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풍양조씨"와 "안동김씨"의 외척세력의 권력 다툼으로 국정은 혼란에 빠지고 왕권은 약화되었던 시기로 "헌종"은 제대로 된 정책을 펴지 못했습니다. "헌종"은 4명의 부인 사이에서 후사를 남기지..
조선 제23대 왕 순조"純祖"는 1790년 7월 29일(음력 6. 18) 정조(22대)와 "수빈 박씨"사이에서 2남으로 태어났으며 처음 이름은 "이공"이었습니다. "정조"와 "효의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 "문효세자"가 5살의 나이에 사망하면서 1800년 1월에 "순조"가 자연스럽게 세자에 책봉됩니다. 그리고 그해 6월 "정조"가 4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순조가 11살의 나이에 왕위를 이어받게 됩니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순조"는 국정을 운영할 수 없었고 영조(21대)의 계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는데 1803년 말에 친정을 시작합니다. 이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안동 김씨"중심의 외척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많은 전횡을 일삼았고 조선은 혼란에 빠..
조선 제22대 왕 정조"正祖"는 1752년 10월 28일(음력 9. 22) 영조(21대)의 둘째 아들 "사도세자(장조)"와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처음 이름은 "이산"입니다. 1759년에 세손에 책봉된 이후 1762년에는 11살의 나이에 할아버지 "영조"의 어명으로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같혀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을 겪게 됩니다. 이후 "영조"는 요절한 첫째 아들 "효장세자"의 양자로 "정조"를 입적시켜 다음 왕위를 이어 받는데 문제없도록 조치합니다. 그리고 1775년 "영조"를 대신해 대리청정을 하던 "정조"는 1776년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25세의 나이에 조선 22대 왕위에 즉위하게 됩니다. 정조는 5명의 부인 사이에서 2남 2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첫째 아들 "문효세자"는 5살의..
조선 제21대 왕 영조"英祖"는 1694년 10월 31일(음력 9. 13) 숙종(19대)과 "숙빈 최씨" 사이에서 2남으로 태어났으며 처음 이름은 "이금", 1699년에는 "영인군"에 책봉되었습니다. 아버지 "숙종"에 이어 1720년 이복형 "경종(20대)"이 왕위를 이어받았는데 자녀가 두지 못하면서 1721년"영인군"을 세자로 책봉하게 됩니다. 이후 1724년 "경종"이 재위 4년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영인군(영조)이 조선 21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영조는 6명의 부인 사이에서 2남 7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정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장자 효장세자(진종)는 10살에 세상을 떠났고 2남 장헌세자(사도세자)는 1762년 뒤주에 가두어 사망하게 만드는 비극을 초래합니다. 이후 다음 왕권은 "사도세..
조선 제20대 왕 경종"景宗"은 1688년 11월 20일(음력 10.28) "숙종"(19대)과 후궁 "희빈 장씨"(장희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처음 이름은 "이윤"이었습니다. 숙종의 첫 아들이자 총애하던 "희빈 장씨"의 소생이었기 때문에 출생 100일도 안돼서 "원자"로 책봉하였는데 이에 반대했던 "서인"을 비롯한 왕비 "인현왕후"까지 폐위되기도 했습니다.(기사환국) 이후 "희빈 장씨"는 왕비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경종"도 1690년(숙종 17년) "왕세자"에 책봉되었습니다. 하지만 권력은 영원하지 않듯이 "숙종"과 "희빈 장씨"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결국 "인현왕후"는 복위하고 "희빈 장씨"는 강등되었다가 1701년 사사됩니다. 이에 "경종"도 "숙빈 최씨"이 아들 "영인군(영조)"에게 세자의 ..